엘러스데어 그레이의 소설 '가여운 것들'은 헐리우드배우 엠마스톤에게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케 한 영화 '가여운 것들'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를 먼저 보았을 때에는 그닥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책으로 접한 '가여운 것들'은 걸작이었다.
1.줄거리
어느날 박물관 직원인 마이클은 폐기물 속에서 발견한 원고 속에 글래스고 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여의사의 이름을 발견하곤 그 원고가 범상치 않은 것임을 직감한다.
그러다 마이클의 눈이 글래스고 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여의사 이름을 포착했다. 한때 공중보건에 관한 페이비언주의 소책자를 저술한 적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오직 여성 참정권 운동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에게만 알려진 이름이었다.
마이클은 그 서류 묶음들을 택시에 실어 가져가서 틈이 날 때마다 꼼꼼히 살펴본 뒤 쓸 만한 것들을 추려 내기로 결심했다.(p.13)
원고를 꼼꼼히 살핀 마이클은 그 원고를 엘러스데어 그레이에게 인계하며 출판을 의뢰한다. 원고는 빅토리아시대의 의사 맥캔들리스의 회고록과 그의 아내가 쓴 편지의 내용이 담긴 '가여운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19세기 말 맥캔들리스는 천재외과 의사인 백스터에게 벨라 백스터라는 한 여인을 소개받는다. 벨라 백스터는 강에 투신해 사망한 여인의 몸에 그녀가 임신했던 아이의 뇌를 이식해서 생명을 얻게 한 존재였다.
이후 백스터는 벨라를 데리고 1년동안의 여행을 다녀온다. 1년후 만난 벨라는 10대초반의 연령의 수준으로 성장해 있었다. 맥캔들리스는 성장한 벨라에게 빠져들었고 둘은 곧 약혼하게 된다.
몸이 두뇌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도록 자극했네 이것이 문제를 야기할 거야 자네는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몰라, 맥캔들리스.
하지만 자넨 벨라를 매혹시켰네. 자네는 나를 제외하고 그녀가 만난 첫 번째 성인 남성이야 나는 그녀가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감지하는 것을 보았네.
몸이 앞선 삶에서 경험했었던 육욕의 감각을 떠올리고 있음을 그녀의 반웅으로 알 수 있었어 그리고 그 감각은 뇌를 자극하여 새로운 생각과 어형을 만들어 냈네.
그녀는 자네에게 자신의 양초(캔들)이자 양초 만드는 사람(캔들 메이커)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어. 외설적인 구조물이 그 위에 세워질 수 있겠지.”(pp.78-79)
하지만 재산분할 문제로 초대된 변호사 웨더번이 찾아와서 벨라를 유혹한다. 벨라는 자신을 가로막는 맥캔들리스를 기절시킨 뒤 웨더번과 함께 떠나버린다.
웨더번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면서 벨라 백스터는 다양한 도시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게 되고 조금씩 벨라는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해서 깨닫는다.
“큰 나라는 성공적인 약탈 공격을 통해 만들어지고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은 대부분 정복자의 편에 서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역사는 대개 약탈을 당한 쪽이 그들의 상실로써 개선되었고 따라서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식의 암시를 주지요
약탈은 국가 내부에서도 일어나오. 헨리 8세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원과 학교와 피난처를 제공했던 유일한 기관인 영국의 수도원들을 약탈했소
그럼에도 영국의 역사가들은 헨리왕이 탐욕스럽고 성급하고 폭력적이었지만, 좋은 일도 많이 했다며 입을 모아 말하지요 그들이 속한 계층이 교회의 토지 덕에 부유해졌거든.”(pp.128-129)
웨더번과 여행을 하면 할수록 벨라는 어린뇌를 가졌을 때의 유아기적이고 본능만을 추구하던 모습은 없어진다. 대신 세상을 이해하고 특히 약자에 속하는 가난한자들, 힘없는 자들, 작은 자들, 당시의 여성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차별에 대해 눈을 뜬다.
내가 방금 목격한 광경이 바로 거의 모든 문명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라더군요 베란다에 있던 사람들은 주인이자 지배자래요.
그들은 물려받은 정보와 재산 덕에 다른 모든 사람들의 우위에 올라서 있죠 거지들의 무리는 시기심 많고 무능한 다수를 대표 한대요 그들은 중간 지대에 있던 사람들의 채찍이 두려워 제 위치를 고수할 수밖에 없죠
이 채찍 든 자들이 바로 사회를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경찰과 관리들을 대표 한대요. 그러고 두 사람이 이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이 영리한 남자들을 물어 뜯거나 할퀴지 않기 위해 이를 앙 다물고 주먹을 꼭 쥐 어야 했어요.
그들은 무력하고 병들고 작은 사람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요 종교와 정치를 이용하여 아주 수월하게 그 모든 고통에 대한 우월함을 유지해요
그들은 종교와 정치를 불과 칼을 이용해 고통을 퍼뜨릴 구실로 삼죠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p.276)
처음의 모습과 달라진 벨라를 참지 못한 웨더번은 벨라를 떠난다. 벨라는 집으로 돌아와 맥캔들리스와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결혼식을 치루던 날 벨라가 강에 투신하기 전에 함께 살았던 남편과 가족들이 찾아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들은 당신을 상대로 한 이혼 소송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오브리 경. 당신이 돌리 퍼킨스와 간통했다는 주장은 소송의 쟁점과는 관계가 없어요.
남편의 간통은 그것이 자연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항문 성교, 근친상간, 동성애, 혹은 수간이 아닌 한 이혼의 근거가 되지 않거든요.
만약 그들이 극도의 잔인함을 근거로 항소한다면, 당신이 레이디 블레싱턴을 지하실에 가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녀가 미쳐서 날뛰었기 때문이고, 당신이 의학적 도움을 줄 사람을 데려오는 동안 그녀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였음을 바로 저쪽 증인들이 증언해야 합니다.
이혼 소송은 레이디 블레싱턴이 법원의 피구금자로서 보호 감호 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겁니다. 추문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면 우리로선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죠.”(p.363)
벨라는 자신이 세계를 여행하며 느꼈던 차별이 남일이 아닌 자신이 겪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폭력적인 곳에서 벨라는 탈출하려 투신 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벨라는 백스터와 맥캔들리스의 도움으로 이혼 한 후 맥캔들리스와 함께 여의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산다.
2.영화와 다른 점
최근에 개봉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가여운 것들'은 위의 내용에서 끝이 난다. 벨라백스터는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복수를 남편에게 하면서 끝이 난다. 그렇지만 원작은 여기서 끝이 아닌 반전이 남아있다.
만약 영화만 보았다면 원작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진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특히 영화는 선정적인 내용과 기괴한 분위기로 이끌어가기 때문에 초점이 원작과는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의 모든 내용이 끝이 난 후 사실 관계 확인과 함께 벨라 백스터가 자손에게 보내는 편지가 등장한다. 그 편지의 내용은 맥캔들리스의 회고록은 그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폭로글이다.
그리고 벨라 자신이 바로 어렸을때부터 19세기 시대의 희생자였음을 밝힌다. 특히 여성차별의 희생자였다고 말한다.
내가침대에서 깨어날 때까지 그 이후로 벌어진 일은 내 기억에 없다 아버지가 주먹으로 나를 때려눕혔고 나는 벽돌과 자갈이 깔린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몇 시간 동안 의식을 잃은 채 피를 흘렸다.
어머니가 의사를 부를 엄두를 냈을지 의심스러워 내 왼쪽 귀 위 머리칼 아래에는 3인치 길이의 고르지 못한 흉터가 여전히 있어.
측두부 봉합선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된 데 따른 것이지 하지만 의식을 잃었던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것이 내 기억력에 영향을 준 적이 없어.
이것이 내 작고한 남편이 ”이상하게 가지런하고 머리 선 아래 두개골 전체를 빙 둘 렀다”고 묘사하는 금이란다.(p.392)
이후 결혼한 후에도 이어졌던 폭력과 차별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한 벨라를 백스터가 구해주었다. 그리고 맥캔들리스는 사실 백스터와 벨라에게 접근하기 위해 이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짰다는 사실을 벨라는 폭로한다.
뿐만 아니라 벨라가 어른의 몸에 아이의 뇌를 이식한 합체물이라는 기괴한 이야기를 지어 원고로 제작하였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당시에 활동적이고 유망했던 벨라와는 달리 그렇지 못했던 맥캔들리스의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벨라는 결론 내린다.
친애하는 독자여, 당신은 이제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에서 선택할수 있으며, 어느 것이 더 개연성이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 두 번째 남편의 이야기는 단연코 가장 병적인 세기라 할 수 있는 19세기에 존재한 모든 병적인 것들의 냄새가 풍기지...(중략)...
내 인생사에 대한 이런 극악무도한 패러디를 읽은 이후로 나는 계속 의문을 가져왔어 “아치는 도대체 왜 그것을 썼을까?” 마침내 답을 찾았기에, 나는 이제 이 편지를 후세에 부칠수있다.(pp.412-413)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영화처럼 선정적이지도 않고, 기괴하지도 않다.
오히려 벨라백스터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한 작가의 풍자를 심도있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3.느낀 점
처음에 영화를 본 것은 솔직히 화제성 때문이었다. 엠마스톤의 파격적인 연기라고 해서 관심이 갔었고 각종 광고나 영상에서 29금 어쩌구 성적인 어쩌구 해서 관심을 가진것도 있다.
그래서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에는 매우 별루였다. 오히려 기괴한 장면과 분위기 성적인 장면들 때문에 찝찝함만 남는 영화였다.
그런데 원작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나친 광고와 선정성으로 묻혀버렸던 작품의 참 가치를 알게 되었다.
특히 시대적 배경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벨라백스터를 통해 당시에 만연하던 성차별, 빈부격차, 인종차별 등을 폭로하는 풍자적 소설을 쓴 것이다.
한가지 의문이 있었던 것은 왜? 벨라백스터를 성인여성의 몸에 아이의 뇌를 이식한 여인으로 만들었을까였다. 그런데 벨라의 폭로편지를 읽으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당시에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른이지만 미숙한 인간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자기보다 뛰어난 여성을 두고 참지 못하는 맥캔들리스가 이런 식으로 벨라를 표현하여 회고록의 형식을 빌려 진짜인것처럼 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불행하게도, 나의 아치는 자신이 사랑했던 유일한 두 사람이자 자신을 용인해 준 유일한 두 사람을 질투했어 그는 갓이 유명한 아버지와 다정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를 두었기에 질투했어
그는 나의 부유한 아버지, 수녀원 교육, 그리고 유명한 첫 남편을 몹시 싫어했고, 나의 우월한 사회적 매력에 분개했어...(중략)...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어린 시절이 아니라고” 생각했음직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갓 또한 어린 시절이 없었음을 암시하는 책을 썼어 콜린 경이 프랑켄슈타인의 방식대로 갓을 제작했기 때문에, 갓은 항상 아치가 그를 알았던 때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내가 정신적으로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어린 딸이었다고 암시함으로써 내게서 어린 시절과 학교 교육을 빼앗았어.
우리 모두에게 이런 동등한 박탈을 날조하고 나서야 그는 내가 어떻게 첫눈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고드윈이 얼마나 그를 부러워 했는지를 수월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p.414)
아무튼 많은 점에서 생각할 것이 많았던 소설이었다. 영화말고 책으로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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