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쇼핑몰'로 화제가 된 강지영작가의 다른 책이 또 있을까? 살펴보다가 읽게된 책이 '거의 황홀한 순간'이다. 솔직히 강지영작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는 중 도서 구독 서비스에서 추천도서로 되어있어서 궁금해서 일어보게 되었다.
줄거리
연향이라는 작은 도시. 기차역앞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하임과 개찰구에서 근무하는 지완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썸을 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연향역에 한 여자가 나타나면서 둘의 기류에 변화가 생긴다.
지완앞에 나타난 여자는 무임. 무임의 삶은 그야말로 지옥같은 삶이었다. 학생시절 남편 희태에게 성폭행을 당해 딸 민아를 임신하여 집을 나온 무임은 그 즉시 집을 나와 어렵게 민아를 홀로키워나갔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희태가 무임을 찾아왔고, 이후로 계속해서 악마같은 희태에게 폭력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무임은 남편의 폭력에서 딸 민아를 지키기 위해 홀로 그 고통을 감래하고 있었다.
주먹을 날리는 대신 쇠젓가락을 라이터 불에 달궈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허벅지나 등허리, 팔뚝 같은 곳을 지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이런 끔찍한 삶을 살던 어느날 희태의 친구 제문이 무임앞에 나타나면서 더욱더 큰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무임은 딸 민아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되는데...희태를 죽이고 자신도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한편 엄마를 잃었지만 지완의 보살핌을 받게 된 민아는 새로운 삶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며 살아가게 된다.
거의 황홀한 순간이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느낀점
강지영 작가의 '거의 황홀한 순간'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하임이라는 캐릭터가 왜 등장하였는가?였다. 무임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이끌어가는데도 불구하고 하임을 등장시킨 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끝까지 하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느껴졌다.
작가는 무임과 하임을 여자의 서로다른 삶의 한 모델로서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하임이 어떤 삶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 와닿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의 상처의 순간이 있었지만 조금 애매했다.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또한 무임의 결말도 너무 예상이 되는 것이라 신선함은 없었다. 현실에서 이런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공감가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에서까지 이렇게 절망적으로 끝나야 했나 싶다. 무임이 민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었을까?
뭔가 아쉬운 작품이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은 좋지만,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읽어볼 책인 것 같다.
밑줄들
이윽고 하얀 효도화를 신고, 역시 하얀 가운과 모자를 쓴 배식원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식탁에 식판을 내려놓았다. 희태가 기대에 찬 얼굴로 찬합 뚜껑을 열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계란찜인 줄 알았던 것은 계란국이었고, 불고기인 줄 알았던 것은 오백 원짜리만 한 떡갈비였다. 뚜껑을 열기 전엔 알 수 없는 것들이 어디 밍밍한 병원 처방식뿐이랴 생각하며, 나는 자그맣게 연향을 발음해봤다. 어쩐지 한때 이름난 기생이었으나, 지금은 늙고 초라한 퇴기의 이름 같았다. 그 서글픈 이름이, 나와 내게 딸린 두 개의 목숨을 불렀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
그때 화장실 옆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뭔가가 움직거리는 게 보였다. 처음엔 민아인가 싶었지만, 옆방에서 밭은기침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경선이거나 지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황급히 방문을 닫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누구에게도 나의 불행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불행의 원죄는 내게 있고, 누구도 그걸 대신 갚아줄 수 없었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그길로 제문은 장기 밀매에 뛰어들었다. 수경처럼 마지막 순간에 뒤통수 맞는 일이 없도록 타깃을 제 발로 찾아오는 공여자가 아닌 주거불명의 노숙자들로 바꿨다. 관할 지구의 노숙자들에게 접근해 약간의 향응을 베푼 뒤 노인에게 얻어낸 근육이완제를 주사하고 희태를 부르면 임무는 끝이었다. 죄책감은 없었다. 그들은 거리에 함부로 나뒹구는 폐지와 다를 바 없이 매일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고, 누군가 치워주지 않으면 거리는 포화상태가 될 터였다. 폐지 몇 장이 사라졌다고 근심하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문과 희태는 청소부였고, 노인은 고물상이었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나는 『거의 황홀한 순간』의 무영과 하임을 상품이 아닌 샘플로 보여주고 싶다. 독자들이 두 여성의 선택을 지지할 수도 혹은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삶이 우리에게서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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