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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싯다르타-도에 이르는 두 가지 다른 길

by 글씀맨 2023.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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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싯다르타'는 '데미안'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1922년작이다. 당시 서양세계에서는 낯선 동양의 불교사상을 소설의 형식으로 전달한 책이다. 브라만 계급에서 태어난 싯다르타의 일생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싯다르타 책표지 그림
싯다르타

책소개

'싯다르타'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에서 선교사인 아버지와 동양학자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엄격한 신학교의 교육과 규율에 따르는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나온 뒤 방랑의 생활 후 작가가된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소설 '싯다르타'에 고스란히 담겨진 것으로 보인다. 

 

소설의 제목 '싯다르타'는 소설속의 등장하는 세존 붓다의 본명이기도 하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본명이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속에서 주인공 싯다르타는 세존 붓다인 고타마를 만나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 그길을 따르지는 않고 세속의 삶을 살며 붓다와 다른 방식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이는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석가모니의 본명이 '고타마 싯다르타'인데 '싯다르타'가 붓다인 '고타마'를 만나 큰 가르침을 받지만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갈래의 길이있음을 그 이름으로 나타내려 한 것 같다. 

 

줄거리

브라만 계급의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싯다르타는 성장하면서 고행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와의 작은 갈등속에서 친구 고빈다와 함께 사문의 길을 걷기 위해 집을 떠난다.

아무런 흠도 없는 아버지가 매일처럼 죄를 씻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왜, 매일처럼 거듭해서 새로이 정죄(淨罪)를 하고자 애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어쩌면 그의 내부에는 아트만이 없는 게 아닐까? 그 자신의 심부에는 샘의 원천이 흐르지 않는 게 아닐까? 이 원천을 우리는 찾아내야 한다. 자아 속에 흐르는 원천을. 그것을 우리는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밖의 모든 것은 헛된 구도요, 우회(迂廻)요, 방황일 뿐이었다..(중략)...하나의 목표가, 단 하나의 목표가, 싯다르타 앞에 세워졌다. 그것은 해탈(解脫)이었다. 갈증에서, 욕망에서, 꿈에서, 기쁨과 슬픔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자아(自我)를 벗어나는 것, 텅 빈 마음에서 안식을 찾는 것, 자아를 벗어난 사유(思惟) 가운데서 기적을 만나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였다.. - < 싯다르타, 헤르만헤세 지음, 차경아 옮김 > 중에서

집을 떠나 사문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멀리서부터 한 소문을 듣게된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았다는 세존  고타마 '붓다'에 대한 소문이었다. 그를 간절히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 어느날 둘은 붓다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는다. 그렇지만 붓다의 길을 따르겠다는 고빈다와는 달리 싯다르타는 홀로 한 동네에 가서 세속의 삶을 살아간다. 

 

그곳에서 만난 기녀 카말라와 상인 카와스와미와 함께 세속의 욕망을 채우며 살아간다. 카말라에게서는 사랑을 카와스와미에게서는 장사를 배우며 큰 부자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될수록 자신이 가졌던 목표는 희미해져 어느샌가 그는 사문의 길을 떠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영원한 자아에 관한 내밀한 깨달음은 여전히 그의 내부에 머물러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대체로 그의 안에 남아 있었지만 하나씩 하나씩 가라앉아 먼지로 뒤덮였다. 재산이 늘어감에 따라 서서히 싯다르타 자신이 소인배의 요소를, 철부지 같고 소심한 요소를 지니기에 이른 것이었다. - < 싯다르타, 헤르만헤세 지음, 차경아 옮김 > 중에서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싯다르타는 카말라와 카와스와미를 떠나 과거에 자신을 강을 건널 수있도록 해주었던 뱃사공 바수데바와 함께 지내며 많은 것을 배워간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 붓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순례 길을 가던 사람들 중에서 옛 애인 카말라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싯다르타를 만난다. 

 

뱀에 물려 죽게된 카말라대신 맡은 아들은 영 버릇이 없었다. 결국엔 싯다르타의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간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싯다르타는 문득 지난날 자신이 아버지를 떠난일을 생각하며 윤회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함께 지낸 뱃사공 바수데바도 세상을 떠나고 홀로 강을 지키던 노인 싯다르타는 어느날 오랜 친구 고빈다를 만나게된다. 

싯다르타는 일찍이 자기가 젊은 나이로 고행자에게 가려고 허락받기 위하여 아버지를 억지로 조르던 일을 회상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이별한 일, 아버지를 떠나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았던 일을 회상했다. 자신이 지금 아들로 인하여 고통을 겪듯이 그의 아버지 역시 자기로 인하여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을까 - < 싯다르타, 헤르만헤세 지음, 차경아 옮김 > 중에서

고빈다는 처음에 싯다르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대화중에 그가 싯다르타임을 알게되고 이미 깨달음에 경지에 오르게된 싯다르타에게 경의를 표한다. 싯다르타 역시 자신과 다르게 성실하게 고행의 길을 걸어 경지에 오른 고빈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느낀점(개인 평점 4 / 5)

종교에서 말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한 길에는 항상 두 갈래의 갈등이 있다. 하나는 엄격한 규율과 가르침을 따라 그 경지에 이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치열한 삶속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 두가지의 길을 싯다르타와 고빈다의 길로 나누고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가르침은 세존 붓다 즉, 고타마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붓다가 되기 위해 고타마를 따라간 고빈다와 세속을 따라간 싯다르타. 전혀다른 행적이지만 종국에는 붓다라는 한 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엄격한 신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나온 뒤 방랑하는 삶을 살면서 이러한 점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종교가 세상과 관련없는 것은 뜬구름잡는 이야기이며 교리와 가르침이 없는 것은 방종한 사이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두가지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참된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고타마 싯다르타가 말하고 싯다르타가 깨달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윤회는 죽어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의 생사고락에서 느껴지는 삶의 반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싯다르타가 자신의 과거를 현재의 상황속에서(아들을 통해서)알게되는 것처럼 말이다. 불자는 아니지만 여러모로 많은 유익을 얻게된 책이다. 

 

그보다도 작가 헤세는 고타마 붓다의 길에 대비되는 길을 걷는 싯다르타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싯다르타의 편에다 긍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고타마는 금욕과 고행을 통한, 속세를 등진 길을 걸어 각성에 이른 유일자(唯一者)요, 싯다르타는 모든 금욕과 본능, 질서와 혼돈, 선과 악을 알몸으로 체험함으로써 완성에 이른 각자(覺者)였다...(중략)...이렇게 하여 그가 도달한 각성(覺醒)의 경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의 단일성(Einheit)의 깨달음이었다.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싯다르타는 고향을 떠났고, 친구를 떠났고, 붓다를 떠났고, 인간 세상을 떠났으며, 마침내 이른 곳이 바수데바가 있던 나루터, 자연〔江〕이었다. - < 싯다르타, 헤르만헤세 지음, 차경아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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