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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검은 꽃(김영하)-현실을 살기위해 버려지는 것들

by 글씀맨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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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

김영하작가가 쓴 '검은 꽃'은 일제강점기 때 멕시코의 에네켄재배 농장으로 팔려가 강제노역을 하게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잠깐 살펴보는 것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요
1905년에 멕시코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서 일하였던 농장으로, ‘에네켄 아시엔다(henequén Hacienda)’라고 부른다. 멕시코 한인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노동하였으므로, 멕시코 한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변천
에네켄은 용설란(龍舌蘭, agave)과의 식물로,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 북서부를 포함한 메소아메리카 지역이 원산지이다. 대체로 25년 정도 사는데, 5∼6년 정도 자라면 섬유를 뽑을 수 있다. 마야인들은 에네켄을 자급자족용 필수품으로 생각하였으므로 오래 전부터 에네켄에서 섬유를 추출하여 노끈, 밧줄, 해먹, 가방, 기타 생활 용품 등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19세기 중반부터 형성되었다. 당시 미국의 곡물회사인 맥 코믹사(McCormick社)가 말 대신에 기계로 움직이는 수확기를 발명하면서 밀의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생산된 밀을 포장하는 포대용 굵은 밧줄의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였다. 자연히 노끈 제작에 필요한 에네켄은 멕시코 최대의 수출 상품이 되었고, 원래 목축업이 흔하였던 유카탄 반도에 점차 대규모 에네켄 농장이 들어섰다. 아울러 식민지 시기 이후 대토지 소유자와 그의 후손,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부자들은 에네켄 농장을 소유하면서 에네켄 재배를 주도하였다.

내용
당시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íaz) 정부는 집권 기간이었던 1876년∼1911년에 경제 발전을 위해서 에네켄 산업을 적극 육성하였다. 다만 에네켄 산업은 노동집약형 산업이기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원주민 외에 적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한 상황 속에서 1905년에 1,033명의 한인들이 유카탄 지역으로 이민을 와서 에네켄 농장과 계약을 맺고 일을 하였다.
1906년에 유카탄주 대농장의 주인이었던 라파엘 페온이 유카탄주 지사에 보낸 보고서(Informe del señor Rafael Peón al Gobernador de Yucatán)를 보면, 당시 유카탄주의 16개 구역 가운데 14개 구역에는 모두 32개의 농장이 분포하였다. 한인들은 이들 농장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일하면서 에네켄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유카탄주 북동쪽의 우눅마(Hunucmá) 구역, 막스카누(Maxcanú) 구역, 테막스(Temax) 구역 등지의 농장에서 주로 일하였다. 이 3개 구역에서 일하였던 한인 노동자는 멕시코 전역에서 활동하였던 한인 노동자의 약 68%에 이르렀고, 56.7%인 591명의 한인들이 라파엘 페온 집안에서 경영하는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였다. 한인들은 하루에 2,500개 정도의 에네켄 잎을 자르고 에네켄 밭의 풀을 제거하였는데, 유카탄 지역이 무덥기에 주로 새벽에 일어나 일하곤 하였다. 1909년에 4년 동안의 계약 노동을 마친 한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멕시코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네켄 농장(─農場))]

여기서 말하는 '에네켄'이 '애니깽'이라는 말로 불려지던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국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 끌려가서도 강제노역에 고통받았던 선조들의 어려움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라가 힘이 없어 지키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그래도 나라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줄거리 느낌

앞에서 살펴본 대로 소설의 시작은 멕시코로 이송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 안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왕가에 속한 사람부터 시작해서 당시의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배에 타고 멕시코로의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은 저마다 가슴에 소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그곳에 가면 신분의 차별도없고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그에 따르는 정당한 보상이 있을테니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여 다시 조선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꾸리겠노라고 생각하며 배에 올라탔다. 하지만 막상 농장에 갔을 때에는 그 소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빠져들어가는 늪처럼 그곳에서의 노동자체가 자신을 빚의 늪으로 빠뜨린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딱히 누구라고 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중에서 주로 시선을 받는 인물은 '김이정'과 '이연수' 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둘 사이에는 신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둘은 젊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김이정과 이연수는 배안에서 정을 통하고 헤어진다. 그러나 얼마후 한 농장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현실적인 벽앞에 둘은 각자 살아내야만 하는 운명의 길을 찾아 각자가 선택한 길을 걸어가고 끝내 사랑은 이루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장면은 불필요것으로 보이는 정사장면이 등장했을 때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굳이 이러한 장면을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개인적으로 불편한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은 소설이라고 여기며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이었다. 역사적으로 아픈 현실에 대해 또다시 알게된 유익한 책이다.

생각난 장면

그러나 어린 진우는 아비와 어미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때면 조증이 찾아오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까짓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부모들이 뭘 저렇게 심각하게 생각할까 싶었다.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살아남아야 할 것이 아니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 말고는 아무리 봐도 살 길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움막에만 처박혀 있는 아버지도 못마땅했다. 이종도는 망해가는 제 나라를 꼭 닮았던 것이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했다. 가족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으면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중략)...밭을 갈고 쟁기를 끄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역관에게 빌붙어 오랑캐 말을 배워 뭘 어쩌자는 것이냐. 어조가 준엄했다. 진우는 지지를 바라는 듯 어미와 누이의 눈을 한 번씩 쳐다본 후에 아비에게 답했다.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은 그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럼 어쩌자는 것입니까, 아버지. 그는 피투성이가 된 손과 팔을 제 아비에게 내보였다. 보십시오. 단 사흘 만에 백성들의 손과 발이 모두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아둔해서가 아니라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오랑캐의 것이라도 배우고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 검은 꽃, 김영하 지음 > 중에서

양반으로서의 체면만 차리고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버질를 보고 진우는 '망해가는 나라'와 꼭 닮았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현실적이고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가슴아픈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들이 진정된 뒤 이그나시오 벨라스케스는 자기 서재로 돌아와 공단이 깔린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주여, 어찌하여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어찌해야 저 미개한 자들에게 당신의 복음을 전하오리까. 아버지, 제게 어떤 고통에도 굴하지 않을 힘과 용기를 주시고 사탄의 유혹과 꾀에 넘어가지 않을 지혜를 주시옵소서. 어느새 이그나시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국으로 인도하겠다는 자신의 진정을 끝내 몰라주는, 저 극동의 가난한 백성들을 향한 동정과 연민이 뜨겁게 솟구쳐올랐다 - < 검은 꽃, 김영하 지음 > 중에서

한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뒤 나온 장면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한장면. 과거 선교라 쓰고 침략이라 읽어야하는 여러 일들을 중 하나라고 본다. 그들은 사명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폭력을 저지르며 행하는 것은 선교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자신의 욕망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덮었을 뿐이다.

권용준은 차례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미 농장의 조선인들과는 사이가 멀어질 대로 멀어져 있었다. 그가 보기에 조선인들은 감독들이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금방 빈둥거리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채찍을 들 수밖에. 역시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그는 이미 농장주처럼 사고하고 양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의 행동거지는 정말 조선의 양반들을 닮아 있었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명령하기는 좋아하며,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때리고 멸시하기를 밥먹듯이 하였다. 그러나 힘센 자에겐 지체 없이 고개를 숙였다 - < 검은 꽃, 김영하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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