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개인평점: 6 / 5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해준 계기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공지영씨의 '고등어'가 그런 의미였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20살의 젊음을 한참 만끽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읽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가치관에 대해 나름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적어도 '나도 한때는...'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삶이 되자.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6번째 이책을 다시 읽었다. 그때 당시 읽었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었고 그 시절에 생각했던 것이 지금도 유효한가? 생각했다. 아무튼 정말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고등어'라는 책이 공지영작가 최고의 책이 아닌가 한다. 처음 출간된지 28년이 지난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흥분과 감동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젊은 시절로 데려다 준다. 뿐만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해주었다.
얼마전 보았던 드라마 중 '화양연화'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종영한 후 이제서야 드라마를 보면서 이 책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 다. 그래서 이 책을 또다시 펼치게 된 것일지 모른다. 이렇게 멋진 책을 다시 한 번 써주길 작가님에게 간절히 바란다.
줄거리
어느날 명우에게 오래전 헤어졌던 은림이 찾아온다. 둘은 운동권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만난 사이였다. 하지만 그때 당시 은림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둘은 뜨겁게 사랑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도피하여 함께 살기로 하였다. 이윽고 함께 떠나기로 한 날 명우는 은림과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갈길로 돌아선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명우는 기업가들의 자서전을 대필해주는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 명우에게 어느날 잊혀진 줄 알고 있었던 은림이 찾아온 것이다.
은림은 여전히 노조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함께 했던 명우를 비롯한 선배들은 각기 살길을 찾아 떠났음에도 은림은 여전히 그자리에 있었다. 사실 은림은 이러한 운동에 관심이 없었던 학생이었는데 선배들의 권유로 활동하게 된것이었다. 그런데 남은 것은 은림이었다. 운동권에서 활동했지만 지금은 기업가의 자서전을 대필해주는 일을 하는 상황에서 만난 은림을 명우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남이 잦아질수록 예전의 감정과 그때 가졌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녀에 대한 감정을 재확인할 때쯤 이번에는 은림이 그를 떠나게 된다.
기억내용
유치원의 세계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개구쟁이와 심술보에게 벌을 주던 선생님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걸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착한 쪽보다는 언제나 심술궂은 쪽들이었다. 우연히, 습관처럼 나쁜 짓을 해보아도 야단치는 사람이 없다는 걸,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결과만 그럴듯하다면 오히려 칭찬을 받는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다. 착한 쪽은 언제나 더디고 미련했다. 실컷 울고, 잠자코 기다려보고 해가 다 져버려서 복도가 어두컴컴해진 다음에야 깨닫는 것이다. 모든 걸 공정하게 심판해주던 선생이란 작자는 이제 이 세계에서 영영 사라져버렸다는 걸 말 말이다- < 고등어, 공지영 > 중에서
참으로 이상한 점은 사고를 친 사람은 현장에 없는데 성실히 현장에 남아있는 사람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 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 < 고등어, 공지영 >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내용중 하나였다.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명우는 나도 한때는..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초심을 잃지 말고 늘 자신을 돌아봐야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노동자들이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비비고 살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라고 연구를 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발표하는 거야? 세계의 끄트머리 한심한 나라의 학생으로 태어나서 무슨 세상을 구원해보겠다고 부모들 가슴에 못을 쾅, 쾅, 박으면서 지랄들을 한 거야? 그래서 무슨 세상이 왔지? 어리석었어. 하다못해 그 시간에 운전이라도 배워두었어야지. 영어 회화를 익히고 그도 아니면 테니스를 치거나 샤갈의 그림이라도 보러 갔어야 해. 뱃속의 아이까지 죽여가면서 이루어야 할 일이 대체 무엇이었단 말이니.... 더 이야기해줄까. 이제 와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이제 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라구. 적당히 빠져나갔어야 해. 나 하나쯤 어차피 대세를 바꿀 수 없다는 걸 현명하게 알아차렸어야 했다구.- < 고등어, 공지영 > 중에서
여전한 삶을 살다 몸이 망가진 은림을 보며 자신의 모습이 비춰진 명우가 발악(?)을 하는 장면이었다. 저 가슴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지만 진심은 또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슬펐다. 명우는 도피한것일까? 현실에 적응한 것일까? 그어떤 삶도 비판받아야 마땅한 삶은 없다. 그저 각자 열심히 산것이다.
뭐가 그렇게 절망스럽나요. 뭐가 그렇게 어리석었었나요?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보고, 운전면허 하나 따지 못하고, 고시 공부 한번 하지 못하고 보낸 젊은 날이 그래서, 이제 와서 그렇게 안타까운 건가요? 그래서, 이제 와서 우린 어리석었다고, 우린 다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건가요? 고작 형의 회한이라는 게 이런 건가요? 우리가 애썼던 날들하고 바꿀 수 있는 게 고작 운전면허예요?.... 아니요,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잊지 않는 사람들, 죽어간 친구와 미쳐간 친구와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들……그들이 곧 이 나라를 이끌어가게 돼요. 이제 곧 우리 세대에게서…… 그래요, 형 말대로 우리 세대를 거치느라 운전면허 하나 따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그들이 대통령이 되고 그들이 예술가가 될 거라구 가짜들 말구 진짜들…… 그것두 권력이라구 운동하지 않는 불쌍한 친구들 주눅 들게 하지 않는 진짜들.. - < 고등어, 공지영 > 중에서
발악(?)하는 명우에게 발악(?)하는 은림이다. 둘의 대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은 결국 믿음었다. 믿느냐 안믿느냐가 버티느냐 안버티느냐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28년전에 은림이 믿었던 그런사람들이 지금 그렇게 하고있을까?......믿음을 배신한건 아닐까....
90년대에 이십 대를 맞이하는 젊은 그들과 어울려, 생각보다 요즘 젊은이들이 참 예쁘고 건강하구나 느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기쁜 뒤에도 남는 어떤 허전함과 아쉬움 같은 것들…….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옛날을 생각할 만큼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하고 혼자 웃기도 했지만 느낌은 강렬했다. 이 소설을 구상해낸 건 아마도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 < 고등어, 공지영 > 중에서
공지영씨가 소설 '고등어'를 쓰게 된 동기를 남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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