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일찍 아내를 잃은 나가미네는 사랑하는 외동 딸 에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불꽃축제가 있던 날 친구들과 축제에 간 딸에마와 일찍들어오라는 통화를 하고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도 딸 에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같은 시기 강가에서 여학생의 시체가 떠오른 사건이 발생한다. 놀랍게도 그 시체는 나가미네의 딸인 에마의 시체였다.
전날 밤 가이지와 야쓰야 그리고 마코토는 불꽃축제에 빌린 차를 타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이유는 눈에 띄는 여자를 납치에 강간을 저지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나가미네의 딸인 에마였다. 그들은 작전대로 에마를 납치해서 억지로 마약을 먹이고 강간을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에마는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체를 강가에 버렸던 것이다.
너무나 놀라고 충격을 받은 나가미네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무명의 제보를 받게 된다. 나가미네는 제보를 받은대로 야쓰야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나가미네는 자신의 딸을 농락하는 범죄영상이 담긴 비디오를 보게 되고 순간 이성을 잃게 된다. 그때 야쓰야가 방으로 들어왔다. 야쓰야를 보고 분노가 치밀어올라 완전히 이성을 잃은 나가미네는 야쓰야를 무자비하게 죽인다. 그리고 비디오를 가지고 나머지 두명 가이지와 마코토를 찾아 복수를 하려고 계획하며 길을 떠난다.
나가미네가 야쓰야를 죽이고 복수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경찰들도 눈치를 챈다. 나가미네는 단숨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입장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찰들은 나가미네의 복수를 막으려고 수사를 시작한다. 나가미네가 이토록 복수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소년법에 속한 자들이라는 이유이다. 자신의 딸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한 정당한 형벌을 법원이 내리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토록 경찰이 나가미네의 복수를 막으려고 하는 것은 소년법에 속한 소년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립적 상황에서 책은 촉법의 모순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총평점: 4.5/5
최근들어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촉법문제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의 정당한 처벌을 피해 갈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정작 피해자들은 그 억울함을 풀지도 못한채 법의 보호를 받는 가해자들을 지켜만 봐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촉법에 해당하는 아이들의 범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2020년 6월 훔친차를 타고 가다가 배달하던 청년을 치어죽인 촉법들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 아이들은 촉법으로 풀린 뒤 계속해서 범죄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최근에 알려지면서 촉법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바로 이 소년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지을 수 없을 것 같은 범죄를 지은 소년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세운 아버지를 경찰들은 막으려고 한다. 오히려 가해자들을 보호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분노했고, 내내 답답했다. 끝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너무 찝찝해서 한동안 마지막 장면을 되새기고 있었다. 항상 사회적 이슈를 소설로 드러내는 히가시노게이고의 소설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최근에 방영되었던 '소년심판'이란 드라마를 함께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생각들
복수가 허무한 행위라는 것은 도모자키를 죽이면서 충분히 깨달았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나가미네는 남은 놈을 그냥 놔둘 수 없다. 그것은 에마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괴롭혔던 짐승들에게 제재를 가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죄를 심판할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은 안다. 그것은 법원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할 수 있나? 그런 일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신문이나 TV 등의 정보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이 내려지는지를 나가미네는 조금은 알고 있다. 그 지식으로 보건대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오히려 법원은 범죄자를 구원해준다. 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그 인간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숨긴다. 그게 형벌일까? 게다가 그 기간이 놀랍도록 짧다. 한 사람의 일생을 빼앗았는데 범인의 인생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니 - <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중에서
법은 놀라울만큼 가해자 중심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정말 법은 피해자의 편일까? 물론 촉법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강한형벌이 꼭 갱생으로 이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대로 가는 것이 정말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옳은 것일까?
우리는 도대체 뭔가? 오리베는 생각했다. 법을 어긴 자들을 잡는 게 우리 일이다. 그럼으로써 악을 없앤다는 게 표면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런다고 악이 없어질까? 체포해 격리하는 건 달리 보면 보호다. 일정 기간 ‘보호’된 죄인들은 세상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 대다수는 또다시 법을 어긴다.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어떤 보복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 오리베는 의문을 품었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 ‘악’을 벨 힘을 가지고 있나? - <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중에서
'소년심판'에서 가장인상깊었던 대사중 하나가 '촉법에 의해 풀려난 소년은 이 사건을 통해 범죄를 학습한다.'라는 말이었다. 시대와 상황에 맞는 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과거의 판례들이 오늘날의 범죄를 정말로 공평하게 법의 정신대로 처벌할 수 있는가? 법은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논의하고 연구하고 바껴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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