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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변신(프란츠카프카)-쓸모없어지니 벌레취급 하는가?

by 글씀맨 2023.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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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프란츠 카프카(독일어: Franz Kafka, 1885년 12월 31일 ~ 1924년 12월 31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이다.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 유대인 사회 속에서 성장했다. 1906년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 1907년 프라하의 보험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의 유일한 의미와 목표는 문학창작에 있었다. 1917년 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요양소 키얼링(Kierling)에서 사망하였다. 카프카는 사후 그의 모든 서류를 소각하기를 유언으로 남겼으나,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가 카프카의 유작, 일기, 편지 등을 출판하여 현대 문학사에 카프카의 이름을 남겼다.
<https://ko.wikipedia.org/wiki/프란츠_카프카>

변신은 프란츠 카프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간단하게 작가에 대해 찾아보았다.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변신을 너무 인상깊게 읽어서 앞으로 프란츠카프카의 책들을 찾아서 볼 생각이다.

대충내용

어느날 아침 주인공 그레고르는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이 벌레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레고르의 갑작스런 변신은 자신도 가족도 모두 충격에 빠뜨린다. 그레고르의 종(?)의 변화도 충격적이었지만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오랜 시간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레고르의 갑작스런 변신은 그동안 그레고르가 가족들에게 제공해주었던 안락한 삶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가족의 삶을 책임졌던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가족들은 저마다 살 방법을 찾아나선다. 이러는 가운데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더이상 가족들에게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족에게 짐짝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그 모습처럼 벌레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유익한 존재가 아닌 해가 되는 존재 된 거이다. 그레고르가 가장 아끼고 믿었던 누이 역시 자신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자 벌레가 된 오빠가 어떻게든 처리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가족들의 철저한 외면과 무관심속에 결국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아사하고 만다.

읽는 내내 징그러웠지만 슬펐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기전까지 실직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장역할을 하였다. 아버지와 가족들은 그것을 믿고 조금은 나태하게 편안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벌레가되어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가족들의 태도는 바뀐다. 더이상 가족들에게 이전의 안락한 삶을 제공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자 철저하게 가족은 외면한다. 책에서 말하는 '벌레'는 더이상 가족에게 안락을 제공하지 못하고 해만 끼치게 된 주인공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오늘날 퇴직한 가장들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일하다 버림받은 여공들, 퇴임한 어르신들, 또는 장애인들 등. 그들에게 무엇인가 받을게 있다면 인간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해가되는 벌레가 될뿐이다. 마치 벌레를 보듯 약자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기면 가차없이 벌레취급하는 일부의 모습들을 이 책에서 가족들의 모습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생각장면

사업이 파산했을 때 이후로 아버지는 한푼도 없는 거지인 줄로 알아왔던 그레고르였다. 그렇지 않다는 말을 아버지의 입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레고르 역시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그레고르는 전 가족을 절망 속에 빠뜨린 파산의 쓰라림을 가족들의 뇌리에서 말끔히 씻어주려고 온갖 정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레고르는 미친 듯이 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보잘것없는 일개 점원에서 영업 사원으로 승급했다 - < 변신·시골의사, 프란츠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중에서

아버지가 실직을 하여 가정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레고르는 가정의 안정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때 아버지는 완전히 파산한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만 보아도 그레고를 도구로 여기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생각된다.

누이동생이 이렇게 주장하게 된 것이 어린애다운 반항심이나 요즘에 와서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자부심의 탓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오빠가 기어다니려면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이동생은 알고 있었다. 사실 누가 보아도 가구가 필요치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하기야 그 나이의 소녀들이 갖는 맹목적인 열성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열성은 기회만 있으면 충족을 위한 출구를 찾는 법이다. 그래서 누이동생은 지금 오빠를 더 비참하게 해놓고 그와 동시에 오빠를 위해서 더 애쓰겠다는 자신의 그 광적인 열성에 사로잡혀 있었고 또 그 열성의 유혹에 빠져 있었다. 텅 빈 방에 그레고르가 혼자 있게 되면 그레테 이외에는 감히 아무도 들어올 수 없을 테니까 - < 변신·시골의사, 프란츠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중에서

오빠가 벌레로 변한 뒤에 누이는 마치 독점이라도 하듯이 오빠를 보살피려고 한다. 그런 모습에 그레고르 역시 동생의 장래에 대해 계속해서 걱정을 한다.

누이동생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손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더는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깨닫지 못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이런 괴물 앞에서 그레고르라는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저것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저것을 먹여 살리면서 참고 지내는 데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래, 네 말이 옳다."
- < 변신·시골의사, 프란츠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중에서

마지막 장면인 이 부분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동생 역시도 그레고르를 단지 가족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상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누이가 선의를 베푼 것은 그레고르가 벌레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다시 변신할 것을 기대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가망성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고 만다. 가슴아픈 것은 그들이 말하는 '우리'안에 그레고르는 없었고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그저 '저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와 '저것'을 구분하는 진짜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사회를 그리고 가정을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한 책이다.

개인평점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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