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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스물아홉생일 1년후 죽기로 결심했다(하야마 아마리)-죽고자하면 살 것이다.

by 글씀맨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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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마 아마리/ 예담. 2011

 

인생에서의 마법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끝’을 의식하지 못했고,
그래서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기만 했었다.

 

줄거리

스물아홉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은 작은 원룸에서 홀로 케이크에 초를 켜고 있었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고 오직 TV소리의 축하를 받으며 케이크에 있는 딸기를 먹으려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아까운 마음에 떨어진 딸기를 씻어서 먹으려는 순간 현타가 온 주인공은 자신의 초라함에 절망하고 만다. 

 

지난날을 생각하며 절망하고 있던 주인공은 씽크대에 놓여져있는 칼을 보고 자살을 시도한다. 그마저도 용기가없어 실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던 주인공은 우연히 TV에서 나오는 라스베이거스 광고를 보게된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라면 딱 1년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화려한 하루를 보내고 후회없이 죽어보자. 이렇게해서 주인공은 라스베이거스에 가기 위한 1년의 여정을 시작한다.

 

파견근무를 하던 주인공은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신나게 놀기 위해서는 적잖은 돈이 든다는 것을 알고 또다른 직업을 찾는다. 그렇게 시작된 직업이 호스티스였다. 낮에는 파견근무로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하는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주말에는 누드모델도 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렇게 라스베이거스에 가기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자기자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한다. 

 

드디어 1년이 지나고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주인공은 자신이 1년동안 목표로한만큼 원없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드디어 마지막으로 목표로 삼은 일을 하기 위해 약봉지를 꺼내든다. 

 

느낀점: 5.5 / 5

특이하고 과감한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출판된지는 오래되었지만 읽으면서 세월과는 무관하게 의미가 깊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늦게 읽게 된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책의 제목처럼 29살에 책을 읽었다면 하는 생각말이다. 숫자 9가 들어가는 나이는 언제나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29라는 숫자는 이제는 사회에서 무엇인가 자리를 잡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인 것 같아 더 그럴 수 있다. 주인공인 아마리도 그랬기 때문에 더 비참함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한다.

 

아마리는 '여분, 남아도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인 아마리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처럼 역동적인 삶을 살았구나 느꼈다. 그 역동적인 삶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으려고 시작한 삶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준 것이다.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이 소설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한다. 주인공 아마리도 죽고자 하니 용기가 생겼고 그것을 통해 오히려 삶을 얻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면서 한가지 생각한 것은 사람이 죽고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쉬울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실제로 죽을만큼 절망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아마리와 같은 마음을 갖기란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극한까지 몰아갈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결국엔 이런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책이었다. 열정이 식어버린 사람에게 생기를 넣어주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내게 주어진 삶, 그리고 여러가능성이 있는 지금 나이에 감사할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좋은 책이다. 

 

내용들

그때였다. 갑자기 화면이 확 바뀌더니 뭔가 반짝이는 빛이 내 안으로 확 빨려 들어왔다. 화면 속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화려하고 눈부신 빛의 축제, 웃음이 끊이지 않고 세상의 모든 행복이 다 들어 있는 듯한 세계, 그곳은 바로 라스베이거스였다. 언제나 볼 수 있는 흔해 빠진 여행 프로그램이었지만, 화면 속 라스베이거스는 이상하리만치 전율로 다가왔다. 나는 화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그것은 난생처음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느낌, 가슴 떨리는 설렘이었다. 갑자기 내 속에서 너무도 낯선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좋다, 단 한 번이라도 저 꿈같은 세상에서 손톱만큼의 미련도 남김없이 남은 생을 호화롭게 살아 보고 싶다. 단 하루라도!(pp.43-44)

주인공의 열정이 저 밑 바닥을 보았을 때 시작된다. 

 

목표가 생기자 계획이 만들어지고, 계획을 현실화시키려다 보니 전에 없던 용기가 나오기 시작했다....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몽상은 그저 몽상일 뿐이었는데, 그런 내가 최초로 몸을 움직였다. 발가락부터 조금씩 움직여 본 것이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다시 불을 켜고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뒤, 인생의 정점까지 가는 동안 나의 신조처럼 지키고 싶은 한마디를 적었다.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자. (pp.61-62)

아무리 어떤 충격을 받아 다짐을 한다 해도 행동하지 않으면 의미없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하지만 치카는 그렇지 않다. 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의 힘은 연극이라는 인생의 목적과 호스티스라는 수단을 동시에 추구하는 데에서 나오고 있다. 바닷가의 아름다운 음악 카페를 꿈꾸는 레이나의 힘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무대’를 가진 사람 특유의 자신감과 지속적인 당당함,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없다. 외톨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인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 가겠다는 집념은 변함없지만, 솔직히 그들이 너무 부럽다.(pp. 85-86)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위해 또다른 수단을 갖는 것.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이루려는 목표가 뚜렷하고 그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지금내가 하는 일로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포기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멋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하나뿐이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천차만별이었다. 사실 그림 속의 나는 ‘나’이면서 또한 내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나와 남이 느끼는 내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늘 내가 알고 있는 느낌과 나의 기준대로 이해받길 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왜 아무도 날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생각과 느낌은 십인십색, 사람의 숫자만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나와 똑같은 느낌을 요구하거나 이해해 달라는 것은 무리이고 어리광이며, 오만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나에 대한 남들의 느낌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pp.106-107)

세상에 이해를 바라며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이해시키지 말고 증명하고 보여주면 된다. 

 

뭐든 그렇겠지만 일류니 고급이니 하는 말은 늘 조심해야 해. 본질을 꿰뚫기가 어려워지거든.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잣대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 세상은 온통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만의 눈과 잣대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그게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p.122)

그래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을 왜 매번 잊는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잖아. 가슴속에 아주 분명한 무언가를 품고 있으면 반드시 표시가 나게 돼 있어. 사람들은 그런 힘에 마음이 끌리거든.” 그러면서 마담은 내 손을 꽉 쥐며 “힘차게 살아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클럽이라는 직장을 버린 대신 ‘인생의 언니’를 얻게 되었음을 깨달았다....1년 동안 나를 목표 지점까지 갈 수 있게 해준 모든 수단들과 작별한 뒤, 나는 다시 벌거벗은 기분으로 세상 앞에 섰다. 아직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길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pp.229-231)

길은 많고 수단도 많다.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인생에서의 마법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끝’을 의식하지 못했고, 그래서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기만 했었다. 아무런 비전도 없이 노력은커녕 비관만 하며 그저 되는대로 살았었다. 하지만 D-365, D-364, D-363……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치열하게 내달릴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난폭한 방식의 자기개혁이었지만,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했기 때문에 라스베이거스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막의 판타지 공간에서 보냈던 20대의 마지막 6일이 나를 바꿔 버렸다.

나는 단 6일을 위해 1년을 살았고, 삶을 끝내기 위해 6일을 불태웠다. 그 끄트머리에서 ‘20대의 나’는 죽고 30대의 내가 다시 살아났다. 이제부터 맞이하게 될 수많은 ‘오늘들’은 나에게 늘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내일’이란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천금 같은 오늘의 연속일 테니까. (p.234)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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