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가 되었던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차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한 것 역시사실이다. 김지혜교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한다. 우리가 알게모르게 행하고 있는 차별에 대해서 말이다.
주요내용
저자인 김지혜 교수는 한 강연에서 자신이 말한 '장애'라는 단어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차별에 대해 좀더 세심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장애’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의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에게 나의 잘못을 시인하고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이미 토론회는 끝났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사과를 할 기회는 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동시에 나의 마음 한쪽에서는 희한한 생각이 자라고 있었다. ‘그 말이 왜? 뭐가 문제인 거지?’ 문제가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고 사소하게 생각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p.6)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이 우리 생활속에서 얼마나 무심결에 일어나고 있는지를 책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누구나 자신을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있다. 그랫 이들을 두고 '선량한 차별주의자'라고 지칭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차별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 기묘한 현상을 따라가보기로 했다.(p.11)
저자는 책에서 성별, 인종, 나이, 직업, 가정형편 등으로 인해서 받게 되는 차별에 대한 예시를 제시하면서 차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렇게 차별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저자는 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누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에서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편하게 연애하고 결혼할 수 있는 이성애자와 그렇지 못한 동성애자, 한국시민권을 가진 국민과 그렇지 못한 난민, 자기 직업을 소신대로 선택할 수 있는 남자와 그렇지 못한 여자 등으로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누리는자와 그렇지 못한자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차별을 줄여나가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결론적인 부분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가 누리는 자가 되었을 때 차별을 없애려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평등을 막는 세력이 된다는 말을 하므로써 차별이 사라지는 것이 사회에서 얼마나 힘든일인가를 이야기한다.
불평등한 사회가 주는 삶의 고단함이다.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올라가야 정말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아 만족스러운 상태가 될지도 알 수 없다. 결국 일정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인정받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려는 동기를 가지며 , 이는 매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 학식과 경험이 많으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도록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가장 큰 저항 세력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p.187)
느낀점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면서 무심코 사용했던 단어들이 차별언어에 해당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장애'라는 말이 그랬는데, 흔히 '~~장애'라는 말을 무심코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라는 말은 일상적인언어 그리고 병명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이 말을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를테면 '통신장애', '내가 기억력에 장애가왔나봐'라는 말을 한다고 했을 때 이것이 차별적 언어일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이 말을 정말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 앞에서 쓰면 문제가되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는 알것 같다. 차별을 느낄만한 언어를 민감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말을 하려고 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누리고 있는 자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특히 혐오발언이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차별언어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아 찔리면서 공감이 많이 갔다.
아쉬웠던 점은 글을 읽으면서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생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좀 납득이 안가는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고 두 가지 비하성 언어가 담고 있는 사회적 맥락까지 동일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김치녀’는 ‘사치를 부리며 남성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여성이남성에게 보여야 하는 ‘바른’ 행동에서 어긋나있다는 평가를 포함한다. 즉 여성에게 기대되는 행동, 말하자면 조신하고 검소한 모습을 보여야 정상이라는 억압적인 역할 규범이 부여된 언어이다 ‘한남충’의 경우, 여성이 남성에게 특정한 역할 규범을 요구하는 의미로 읽히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여성의 입장에서 ‘나도 당신을 조롱 할 수 있다’는 호명 권력을 사용하는 현상으로 읽힌다.(p.97)
이것은 좀 너무 여성편에서만 이야기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성별을 편가르기 하는듯한 분위기인 것같아 고개를 갸우뚱 했다.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중된 차별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잣대로 똑같이 평가해야 평등일 것 같은데 책을 읽다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이 종종 발견되서 납득이 안될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못한 차별에 대해서 알게 해주었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부분에서 좋은 책이었다.
밑줄모음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를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할 수 없는 동성 커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한국에서 사는 것을 특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는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발견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자신의 특권을 눈치채지 못하곤 한다.(p.29)
“정말 너무도 화가 나네요. 이젠 국민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드네? “애 둘 키우는 일반 시민입니다! 혐오자 극우파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고정관념은 무언가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존재한다. 범죄자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영화에서 본 극단적인 악인을 상상한다. 실제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보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 라고 반응하는 것은 자신이 범죄자에 대한 과장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차별도 마찬가지다.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KKK와 같이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는 악랄하고 기괴한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기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pp59-60)
비하성 표현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 때로 사회는 단어를 교체한다. ‘장애자’나 ‘불구’를 ‘장애인’으로, ‘결손가족’을 ‘한부모가족’이나 ‘조손가족’으로, 혼혈인을 ‘다문화가족 자녀’로 순화하는 식이다. 이런 단어의 교체는 그 단어 안에 담긴 무의식적 편견과 낙인을 반성하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단어의 교체로 낙인이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장애인', '다문화'등의 용어가 다시 낙인을 담은 비하성 용어로 사용되는 것처럼 단어를 바꾸어도 그 대상을 비하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낙인은 지워지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pp.93-94)
아마도 최근 한국사회에서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운 가장 뜨거운 쟁점의 하나는 동성애 또는 동성 결혼일 것이다. 동성애는 성경에서 ‘죄악’ 행위이며 동성결혼은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좀더 온화한 표현으로 “동성애자를사랑한다”고 말해도, 그 ‘사랑’이란 동성애자를 신앙으로 ‘치유하여 더 이상 동성애자가 아니게 만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관점에서는 사람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이 다양하고, 모두가 ‘있는그대로’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원칙을 받아 들이기 어렵다.(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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