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총점 4.5 / 5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처음 출판되었을 때 한 번 읽었었던 책이다. 그때는 그다지 인상에 남지는 않은 책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이 책이 선정되어서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전에 생각치 못했던 감동을 받아버렸다. 흔한 청소년 소설과는 결이 달랐던 것으로 느껴졌다. 물론 학원폭력물에 가까운 장면들은 눈살을 치푸리게 했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신선했고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태어날때부터 편도체(편도체 모양이 아몬드처럼 생겼다고 해서 책 제목이 아몬드이다.)가 다른 아이들보다 작아 감정표현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 '윤재'가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 뒤 '곤이'와 '도라'를 만나면서 감정을 회복해가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찾기 위해 성장의 과정을 밟아가는 주인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타인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장면들을 볼 때 정말 누가더 편도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책속에서는 편도체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과 관계를 맺게되는 주변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마다 타인에 대해 무감각한 정도에 따라 차례대로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아이의 죽음을 외면했던 슈퍼마켓 아저씨, 살인자, 여론, 아이들, 교사 그리고 철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출현을 통해서 누가 정말 편도체에 문제가 생긴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예전과 다르게 공동체 의식이 없어져간다는 것을 한탄해 하지만 정작 사회는 공감능력을 상실하도록 교육시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생각나는 장면
나는 한동안 아저씨를 설득할 말을 찾느라 침묵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아는 단어도 별로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했던 말보다 더 진짜 같은 말을 떠오르지 않았다. "죽을 지도 몰라요." 했던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가 신고를 하고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캐러멜을 꼼지락대며 만지작거리는 나를 보다못한 아저씨가 아무것도 사지 않을 거면 그만 나가라고 하는 동안, 그러고도 한참을 꾸물거린 경찰이 현장까지 가는동안, 나는 줄곧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을 아이를 생각했다. 그 애는 진작에 숨이 끊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 애가 바로 그 아저씨의 아들이었다는 거다...중략...온 얼굴이 눈물로 덮인 아저씨가 경찰들에게 몸을 맡긴채 울부짖으며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보고있을 때의 표정과는 사뭇달랐다. (pp.17-18)
아마도 아저씨는 자신이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인공의 말을 흘려들었을 것이다. 누구나 이렇게 대하지 않을까? 자신의 문제가 되기전에는 공감하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혹시 라는 마음을 가지고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의 삶과 기록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자, 대중의 관심은 사건 자체보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조명으로 바뀌었다. 남자의 삶이 자기네들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중년 남자들은 비탄에 빠져 탄식했다. 남자에 대한 동정 여론이 퍼지기 시작했고, 초점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대한민국의 현실로 옮겨 갔다. 누가 죽었는지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중략....장례식장에 온 여경하나는 유족들에게 절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조금 뒤 나는 그녀가 복도끝에서 나이 많은 남자 경찰에게 혼나고 있는 걸 봤다. 앞으로 이런일은 부지기수로 보게 될거야. 그러니까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 해. 순간 그와 내눈이 마주쳤다(pp.57-58)
어쩌면 사회가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능력을 상실하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엄마는 늘 집단생활에서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엄마가 내게 그 지난한 교육을 시킨 것도, 내가 그 희생양이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할멈이 사라진 지금 엄마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어떤 얘기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금세 눈치챘고, 그러자 별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짓궂은 농담을 퍼부었다...중략...교사 회의에서도 내 얘기가 나왔다. 내가 튀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나의 존재 자체로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고 학부모들이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선생님들은 나의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p.80)
상태를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낙인찍고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일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일이다.
심박사를 찾아간 어느날이었다. 텔리비전 화면속에서 폭격에 두 다리와 한쪽 귀를 잃은 소년이 울고있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한 뉴스다. 화면을 보고있는 심박사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내 시선은 미소 띤 박사의 얼굴 뒤로 떠오른 소년에게 향해있었다. 나같은 천치도 안다. 그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끔찍하고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등지고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느냐고..비슷한 모습을 누구에게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p.127)
책을 덮으면서 공감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공감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선택적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나와 관계된 일에만 공감하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났던 많은 참사들 타인에 대한 슬픔, 아픔들...펜데믹 이후 더 쓸쓸해진 사회 속에서 공감능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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