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개인평점: 4 / 5
최근 한 영상채널에서 '클루지'라는 책이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었다. 마침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해서 읽어 보았다(안타깝게도 후에 다른 책으로 교체되었다.) 시청한 영상에서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사람은 자신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려 하면 심리적인 저항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걸맞게 이 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적 사고의 오류에 대해서 검증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합리적 사고를 갖기까지 많은 진화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오류를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진화하는데 있어서 전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그때 그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클루지'라고 명명했다. 책에서 말하는 클루지의 기원은 이렇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예컨대 1970년 4월, 아폴로 우주선 13호의 달착륙선에서 이산화탄소 여과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해보자. 당시에는 대체 여과기를 승무원들에게 보낼 방법도 없었다...(중략)...우주비행 관제소의 공학자 에드 스마일리는 당시 상황에 동료들과 의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 캡슐 안에 뭔가 쓸모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궁리를 해봐라." 다행히 지상 정비원들은 과제를 풀 수 있었다. 그들은 비닐 봉지와 마분지 상자, 절연 테이프, 양말 한쪽으로 투박한 여과기 대용물을 그럭저럭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세명의 우주 비행사는 목숨을 건졌다. 그 중 한명이었던 짐 러벨은 훗날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 장치가 특별히 멋있지는 않았지만, 어째든 작동했어요."-< 클루지, 개리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중에서
이와같이 인간의 사고가 임기응변식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사실상 완벽하고 합리적인 사고라기 보다는 오류가 있고 모순이 있는 사고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비단 인간의 사고 뿐 아니라 신체적인 진화에도 이러한 예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척추는 형편없는 해결책이다. 만약 네개의기둥이 균등하게 교차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몸무게를 분산해 지탱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단한개의 기둥으로 전체 몸무게를 지탱하는 척추는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직립보행 덕분에 우리는 똑바로 선채로 손을 자유롭게 놀리면서 생존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요통에 시달리고 있다.-< 클루지, 개리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중에서
이처럼 인간의 마음과 신체는 주먹구구식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으며 그 안에 수많은 오류와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인간의 오류를 드러내는 것에 있지 않다. 우리안에 있는 수많은 클루지를 인식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더 발전되고 합리적인 나로 성장시키려하는데 있다.
책을 읽고 난뒤 어! 이것도 클루지인가? 하는 생각을 한동안 했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의 지'처럼 우리안에 클루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러한 점을 다시 인지하게 해 준 책이다.
생각나는 내용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느낌을 받으면 그것을 자동적으로 일반화해서, 그 사람의 다른 속성들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후광효과halo effect’라고 부른다. 이것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특성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의 나머지 속성들도 부정적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갈퀴효과’인 셈이다...(중략)...우리는 주제가 무엇이든 우리의 신념을 위협할 만한 것보다 우리의 신념에 잘 들어맞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우리가 (거창한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어떤 이론을 믿고 있다면, 그것을 위협할지도 모를 증거보다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가 우리 눈에 더 잘 띄는 경향이 있다 - < 클루지, 개리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중에서
유행하는 말중에 '답정너'라는 말이 있다. 답을 정해놓으면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답이 합당하다는 것을 강화하기 위한 증거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점점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편향된 주장만을 하게 된다. 동영상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알고리즘이 이런 위험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얄궂게도 정말로 중요한 듯한 것은 절대적 부가 아니라 상대적 수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료 직원들의 평균 수입이 900만 원인 직장에서 800만 원을 받을 때보다 동료 직원들의 평균 수입이 600만 원인 곳에서 700만 원을 받을 때 더 만족해한다. 지역 사회의 전반적인 부가 증가하면 개인의 기대도 덩달아 부풀어 오른다. 우리는 그저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결국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더 열심히 일해도 행복의 수준은 본질적으로 그대로인 행복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셈이다 - < 클루지, 개리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중에서
결과적으로 보면 '부'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말이 된다. 내가 행복한거냐? 내가 행복해보이는게 행복한거냐?
대학생들에게 세 명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비디오를 보여준 뒤에 이 세 사람 각각에 대해 얼마나 큰 호감을 느끼는지를 점수로 평가하도록 하였다. 이때 연구자는 피험자들에게 비디오에 나오는 세 사람 가운데 (사전에 무작위로 선택된 특정의) 한 명과 나중에 데이트를 하게 될 것이라고 (비디오를 보기 전에)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피험자들은 자신의 데이트 상대로 지목된 사람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것이 (이 경우에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좋게 느끼는지에 대한 신념이) 우리가 믿고 싶은 것에 의해 얼마나 쉽게 오염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해리 닐슨Harry Nilsson의 뮤지컬 〈더 포인트The Point!〉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딕! 너는 네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구나. - < 클루지, 개리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중에서
저항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이기고 새로운 길을 시도해보는 것이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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