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라는 조금은 고개를 갸웃할 것 같은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다. '파과'를 집필한 구명모 작가도 처음 접하는 작가였다. 평소 좀 파격적인 제목의 책들은 무언가 이해하기 힘들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많다고 느꼈기에 이 책도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다. 하지만 읽다보니 평범한 첩보액션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책소개
1) 작가 소개
'파과'를 집필한 구병모 작가는 1976년 서울출생으로 경희대국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2008년 제 2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고 2009년 데뷔했다. 대상을 받은 작품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작품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남자 작가로 느껴질 수 있는데 여성 작가이다.
시니컬한 문장이 특기이며 2010년 중반 이후부터는 청소년문학에서 일반문학으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
2) 작품들
대표작으로는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위저드 베이커리(2009)' 가 있다. 이후에 '아가미(2010)', '피그말리온 아이들(2012)', '파과(2013)', '네 이웃의 식탁(2018)' 등 다양한 집필활동을 최근까지 하고 있으며 시티컬한 문장이 그녀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2.줄거리
어렸을 적 '류'라는 사람에게 거두어져 전문 킬러(방역업자)가 된 조각은 60대가 된 노년에도 여전히 방역업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속한 방역회사의 창단 멤버인 그녀는 여전히 그쪽 업계에서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이전과 다른 몸상태로 인해 눈치를 보는 상황에 놓여졌고, 주변사람들도 슬슬 그녀를 노인네 취급하는 것같이 느껴진다.
류를가끔 떠올렸고 그가 생전에 주의를 준 사항들에 자주 이끌렸지만, 제 몸처럼 부리던 연장으로 인해 손바닥에 잡힌 굳은 살과도 같은 감각 외에는, 류를 생각하면서 온몸이 뻐근하게 달뜨고 아파오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p.255)
그런 그녀 앞에 젊은 신입 하나가 나타난다. 이름은 투우라고 했다. 이 젊은 남자는 조각을 만날 때마다 시비를 건다. 투우가 조각에게 시비를 거는 이유는 투우가 어렸을 적 조각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조각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각이 의뢰를 맡은 큰 건수에 실패를 하게되고 이 일을 방해한 것이 투우임을 알게 된다.
그녀가 심란한 이유는 팔이 붙잡힌 순간 곧바로 소매를 뿌리치려고 했으나 투우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서인데, 자신의 신체적 노화가 일상의 노력을 추월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초조함이다. 베일 철을 지난 이삭은 고스러지게 마련이고 젊은 남자와 나이 든 여자의 당연한 힘 차이라는 건 이 상황에 고려 대상이 아니며 지금은 업자 대 업자일 따름인데 조각으로선 사소하고 순간적인 장면이라 한들 이 코흘리개한테 졌다는 게 핵심이다. 상대방에 대한감정적 반응보다 부실한 자신의 몸상태에 대한 실망 때문에 그녀는 투우가 천천히 힘을 풀고 소매를 놓았음에도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을 미처 못 하고 다시금 소파에주저앉는다.(p.46)
그리고 얼마 후 조각이 눈여겨보던 의사의 딸이 납치되는 사건이 생기는데 이 일을 벌인 것 역시 투우임을 알게 된 조각은 투우의 목적이 자신임을 인지하고 투우와의 결전을 벌이기 위해 그가 오라고 지시한 장소로 간다.
만만찮은 상대인 투우와의 결투를 하러 간 조각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3.개인평점: 3 / 5
'파과'라는 제목에 이끌려서 책을 읽었다. 처음 장면이 주인공인 조각이 방역(살인청부)을 하는 것이어서 여타 다른 책처럼 스릴러물이나 첩보 아니면 살인청부에 대한 액션활극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도 말했듯이 이 책은 그런 것을 그리려고 한 책이 아니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놓은 채 그 자리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선 나는 이렇게 된다(그것도 인생에 급 변수가 없다는 전제 하에). 아니 그런 당연한 사실을 뭘 세상 태어나 처음 인식했다는 듯이 새삼스럽게. 그러게말입니다. 그 뒤로 어떤 과일이든 가능한 한 낱개로만 사거나 받았다는건, 일상범주의 이야기. 그러니까 설마라도 이 소설이 아드레날린의 폭발적인 분비를 유발하는 킬러 미스터리 서스펜스인 줄 알고 선택 했을 누군가에게는, 번지수가 달라 미안하다는 이야기(p.335)
한때는 방역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서서히 노인이 되면서 맞딱뜨리게 되는 몸의 변화와 심정의 변화를 그린 책이었다. 책 내용에서도 보면 손톱이라 불릴만큼 날카로운 살인 솜씨를 가지고 있는 조각이 나이가 들어 감정이 여려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무용은 촉촉한 코를 주인의 턱에 비비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잘 하지 않는 일인데 녀석은 가끔씩 주인이 우울한 주제로 혼잣말을 넋두리처럼 하고 있을 때 이런 애교를 부리곤 한다. 말뜻은 몰라도 어조로 아는 듯하다. 무용의 등을 계속 쓸어 내리며, 어느덧 무릎이 저려오는 걸 느끼며 그녀는 말을 잇는다. “꼭 개라서 그런 게 아니다. 사람한테라고 다를 바 없지, 늙은이는 온전한 정신으로 여생을 살 수 없을 거라는 늙은이는 질병에 잘 옮고 또 잘 옮기고 다닌다는...늙어서 누구도 맡아주지 않는다는. 다 사람한테 하듯이 그러는 거야. 하지만 내가 너를 많이 보듬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그런 지경에 놓이는 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pp.136-137)
그러면서 한 때 빛나던 순간을 그리워하는 한 노인 방역업자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늙어가며 이전과 다른 약함을 맞딱뜨리는 순간이 온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쓸쓸한 이야기. 이것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 책의 제목은 '파과'이다. 작가가 마지막에 질문하는 것처럼 '파과'라는 제목에는 동음이의적 요소가 있다.
破果(파과) 는 흠집이 난 과일이라는 뜻이고, 破瓜(파과)는 1) 여자나이 16세를 뜻하거나 2) 남자나이 64세를 뜻한다. 그리고 3)성교로 처녀막이 터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책의 제목은 둘다를 내포하지만 실상은 젊을 뜻하는 破瓜(파과)의 뜻을 말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누구나 젊을 때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마지막에 질문한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 알쏭달쏭한 질문이지만 아직 젊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것이 아닐까 외모가 아닌 심장이 말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지루했다. 이유는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다. 마치 묘사를 일부러 길게 늘어놓은 듯한 느낌. 어쩌면 단순한 이야기를 길게 늘이기 위해서 이렇게 했나 싶을 정도로 긴 문장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간결한 문장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문장형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좋은 책이다. 작가의 말과는 다르게 그냥 액션활극으로 생각하며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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