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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공허한 십자가(히가시노 게이고)-사형제도는 필요한가

by 글씀맨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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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그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줄거리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던 나카하라와 그의 부인인 사요코는 집안에 침입한 강도에게 사랑하는 딸 마나미를 잃게 된다. 두 부부는 자신의 사랑하는 딸을 죽인 그 범인이 사형을 당하게 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이윽고 두 사람의 집요한 노력으로 범인은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렇지만 두 부부에게 전과 같은 행복은 찾아오지 않고, 결국 두 부부는 서로의 아픔만 확인한채 이혼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어느날 한 형사가 나카하라를 찾아온다. 이유는 전 부인이었던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살해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사요코를 살해한 범인 마치무라 사쿠조라는 남자는 범행후에 곧바로 경찰에 자수를 했다고 한다. 그는 범행동기가 단순히 돈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했지만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형사는 생각했다. 그래서 살해당한 사요코의 전남편인 나카하라를 찾아온 것이다. 


길거리에서 이유없이 살해당한 사요코의 행적을 탐문하던 형사는 사요코가 딸을 잃고 이혼을 한 뒤 '사형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을 쓰려고 했다는 사실을 나카하라에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실에 의문을 가진 나카하라는 사요코가 쓰려고 했던 글에 강한 호기심을 갖게되고 그로부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조사를 하던 중 사요코가 취재했던 이구치 사오리라는 여자와 사요코를 죽인 범인 사쿠조의 사위 후미야가 어린시절 연인이었으며 원치않는 임신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의 과거를 통해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개인평점: 3.6 / 5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 1997년 12월 30일에 시행된 사건이라고 한다. 그후 사형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국제엠네스티라는 단체에서 2007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제도 자체를 폐지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히가시노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는 사형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형제도 자체에 담겨져 있는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은 범행을 당한 유족들을 중심으로 사형제도를 바라보게한다. 그 과정에서 사형을 통해서 정말로 사회를 보호하고 정의를 이룰 수 있는가? 사형제도의 문제점은 없는가? 와 같은 주제를 다룬다. 물론 범행을 당한 유가족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사형제도의 정당성을 말하려고 하는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범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속에서 사회적안전망의 문제 그리고 교육, 갱생의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형제도에 대해서 다시한번생각하게 되었다. 사형제도의 찬반은 결국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오류없이 사람을 죽이는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참고할만한 영화가 '데이비드 게일'이라는 영화로 사형 판결의 오심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면들

피해자 참가 제도란 피해자나 유족이 검찰처럼 구형 의견을 말하거나 피고에 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제도이다. 그 제도가 곧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일찍 시행되었다면 히루카와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볼 수 있었을 텐 데...야마베는 잘됐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번 사건에서 사요코씨의 부모님께서 피해자 참가인으로 참석 했으면 해서요.”...(중략)...“재판을 피해자와 유족의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예전의 재판은 재판관과 변호인 검찰의 것이었습니다. 피해자나 유족의 생생한 목소리가 반영 될 여지가 전혀 없었지요. 몇 명을 죽였다든지 , 어떤 식으로 죽였다든지 , 계획적 인지 우발적 인지, 그런 표면적인 부분으로 모든 것이 정해 졌습니다. 그 범죄 때문에 누가 얼마나 슬퍼하고 얼마나 괴로워하느냐에 상관없이 말이지요. 그것은 나카하라씨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습니까?”(pp.174-175)

가끔 재판과정을 보면 사건의 당사자는 온데간데없고 검사와 변호사 또는 변호사들끼리 알아서 이야기하다가 형량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당사자들이 정말 납득할수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기도 한다. 적어도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에 따르는 위험도 있겠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렇겠지요. 그리고 히루카와도 결국 진정한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히라이는 약간 사시인 눈으로 나카하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p.201)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 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갱생 했느냐 안 했느냐를 완벽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면 갱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형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 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pp.212-213)

사형은 반성을 위한 판결일까? 범죄자를 세상과 격리시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후의 방법일까? 이것을 논하기전에 법의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법에는 예방, 처벌, 갱생 이라는 세가지 기능 있으며 이것이 잘작동해야 올바른 법이라고 생각하며 그렇지 못할때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그때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전 틀림없이 죽었을 거예요. 아이도 태어나지 못했을 거고요. 남편은 분명히 21년 전에 한 생명을 죽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이후에 두 생명을 구했어요. 그리고 의사로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남편 덕분에 얼마나 많은 난치병 아이들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세요? 남편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은 생명들을 구하고 있어요. 그래도 남편이 지금까지 속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중략)... 교도소에서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pp.412-413)

무엇이 정말 올바른 속죄인가? 메스컴을 보면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아무런 반성도 없고 그들도 인권을 지켜야 한다면 얼굴을 가리고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법은 뭘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가령 사형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유족의 승리가 아니다. 유족은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다만 필요한 순서, 당연한 절차가 끝났을 뿐이다. 사형 집행이 이루어져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일도 없다....(중략)... 유족에게 범인이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흔히 죽음으로 속죄 한다는 말을 하는데, 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법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 점에 불과하다...(중략)... 그 통과 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p.190)
 

사형제도에 대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대목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동안 사형제도의 존폐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입장에서 논의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자신을 성폭행한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다시만나는 여학생의 입장을 생각해봤는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가 석방되는 모습을 본 유가족은 어떨까? 쉬운일은 아니지만 좀더 좀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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