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을 집필한 최은영 작가는 '쇼코의 미소'로 처음 접한 작가였다. 쇼코의 미소를 너무 잘 읽었기 때문에 이번 '밝은 밤' 역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총 5부로 되어 있는 책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고, 그 안에서 위로를 몰랐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세대간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줄거리
이혼의 아픔으로 힘들어 하던 지연은 어렸을 적 할머니와 놀던 기억이 있는 희령이라는 도시로 직장을 옮긴다. 그곳에서 우연히 할머니를 만난 지연은 오랜만에 만나 어색하기만한 할머니와 이웃 생활을 시작한다. 할머니와 왕래를 하는 가운데 지연은 할머니의 지난 날의 일들을 듣기 시작한다.
할머니를 통해서 자신이 증조할머니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은 후 지연은 할머니에게 증조할머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하는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연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관계를 통해서 조금씩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희령에서 할머니와 지내던 시간동안 지연 역시 조금씩 회복을 하게 되었고 할머니 역시 지연을 통해서 오래전 헤어졌던 가족과 같은 한 동무를 만나게 된다.
느낀점 4.5 / 5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은 일제강점기에서 시작하여 현대까지 이르는 방대한 한 가족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주로 증조할머니 중심으로 할머니 어머니에까지 이르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세 여자들은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남자로 인한 상처이다. 지연 역시 이혼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 희령으로 내려온다.
그때의 나는 사람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절히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서울에서처럼 친구와 한참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고,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내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었도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깝고 끈끈해서 속까지 다보여주고 서로에세 치대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했다...(중략)...예전처럼 몸을 쥐어짜며 울지는 않는 내가 보였다. 두시간, 세사긴을 이어잘 수 있는 내가 보였다. 그렇지만 '나아지고 있는 걸까'라는 잘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가 없었다._밝은 밤(최은영) p.14
그러나 상처는 남편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상처를 후벼 판 것은 언제나 엄마라는 존재였다. 그래서 지연은 끈끈한 관계가 아닌 느슨한 관계로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었고 그 사람이 곧 할머니가 되었다.
어떤 말은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는 걸 알게 한다. 내게는 엄마의 그 말이 그랬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 나의 이혼으로 엄마가 얼마나 힘든상호아인지, 얼마나 괴롭고 우울한지 호소했다. 심지어 내 전남편에게 연락해서 그의 행복을 빌어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눈에는 나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이 남자에게 쉽게 공감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의 이혼을 언급하며 나를 욕했듯이, 그가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조차도 그가 바람피우는 계기를 만들었을 나를 상상하며 비난했듯. 그러나 엄마마저도 자신의 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들에게 공감하고 나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사실에 나는 무너졌다._밝은 밤(최은영) p.18
그곳에서 만나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속의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엄마는 공통적으로 무심한 남편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인물인데 그 상처를 더 깊게 덧나게 한 것은 항상 각자의 엄마였다. 지연이 엄마로부터 상처를 받았듯이 엄마 역시 할머니로부터 상처를 받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미선이가 겪은 일을 몰라. 미선이 말고는 누구도 모를 거야. 그런데 그애에게 그렇게 함무로 말했으니..." 할머니는 말을 고르듯 잠시 멈췄다가 이어서 이야기 했다. "사람명이 하늘에 달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고 했어. 미선이가 자꾸 자기 탓을 하니까,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그말을 듣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딸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리란 걸. 그 순간 자신을 향해 내밀고 있던 딸의 손을 자신이 내쳐버렸다는 것을...(중략)...엄마는 할머니와 점점 더 멀어졌다._밝은 밤(최은영) p.318
결국 상처는 대물림 된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위로하는 방법을 윗 세대로부터 배우지 못한 세대가 아랫 세대에게도 위로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과거의 시대에 억압 받았던 환경에 의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소설에서 최은영 작가는 오랜 세월 이어지는 이와같은 상황들을 보여주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큰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네탓이 아니라고 하는 말 한마디가 어쩌면 모든 것의 서러움을 풀어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엄마에게 듣지 못한 이야기를 지연은 할머니에게 들으며 위로를 받는다. 시간이 지나면 공감과 위로가 가족간에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게된다.
그시절 왜 위로의 말을 하지 못했을까? 위로의 말도 배워야 하며 들어봐야 한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인 것 같다.
책소개
'밝은 밤'의 작가 최은영은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등이 있다. 허균문학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가에 따르면 '밝은 밤'은 자신이 가장 힘든 시기에 집필한 작품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위로가 필요한 시기에 위로의 책을 집필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절 한없이 받아주고 지지해 주었던 할머니의 위로가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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