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해연 작가의 '~~~의 날'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후 정해연 작가의 다른 책들을 알아보다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구독서비스에서 '홍학의 자리'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지체하지 않고 읽었다. 기대한만큼이나 그 자리에서 단번에 읽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1.줄거리
고등학생인 다현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던 담임교사 김준후는 늦게까지 업무에 시달리던 밤에 다현과 교실에서 정사를 마친 뒤 잠시 자리를 비운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교실에 왔을 때 죽어있는 다현을 보게 된다.
준후는 자신이 살인범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불안과 다현을 죽인 진짜 살인범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현의 시신을 근처 호수에 던진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품에는 항상 다현이 있었다. 작은 몸을 바르작거리며 준후가 몸을 탐할 때마다 쿡쿡거리며 웃었다. 준후는 다현의 품 안에서 자유로웠다. 어떤 윤리도 그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없는 것은 없었다. 이 행복이 영원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끝맺음을 상상한 적도 없었다. - < 홍학의 자리, 정해연 > 중에서
얼마후 다현의 실종사건이 접수되고 사건을 맡은 강치수 경위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담임교사인 김준후 교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준후의 계획대로 호수에서 다현의 시신이 떠오르게 되고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지게 된다.
주변인물을 탐색하던 강치수 경위는 다현의 죽음과 관련 있다고 생각되는 용의자들을 하나씩 파악하기 시작하는데 용의자에는 담임교사 김준후, 다현에게 학폭을 가했던 정성현 그리고 정성현의 어머니로 다현의 어머니에게 크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였다. 마지막으로 준후와 다현의 관계를 알고 있는 준후의 아내 영주였다.
좀처럼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워 혼란을 겪던 강치수는 다현을 죽인사람과 시신을 옮긴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고 다시 조사를 시작한다. 한편 준후는 강치수로부터 다현의 죽음이 익사라는 충격적인 소리를 듣고 나름대로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한다.
하지만 그것만은 알고 싶었다. 다현은 어떻게 죽었는가. 차라리 즉사했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준후는 강치수 형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강치수 형사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빛이 스쳤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그의 표정이 의아했다. 강치수 형사가 차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박인재 형사와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준후는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태웠다. 이 대답을 듣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가 어디선가 울리는 듯했다. 이윽고 강치수 형사가 결심했다는 듯 준후를 보았다. “채다현 학생의 사인은…….” 그는 유감을 표하듯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익사입니다. ” - < 홍학의 자리, 정해연 > 중에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갈 수록 새로운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고 강치수는 결국 다현을 죽인 범인을 알게 된다. 한편 김준후는 수사망이 자신에게 좁혀 온다는 사실을 감지하고는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네덜란드로 떠나려고 하지만 공항에서 강치수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다현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듣게 된다.
2.개인평점: 4 / 5
“ 스릴러는 경고입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대답이다. 스릴러가 나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답한 것은 진심이었다. 스릴러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경고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겪은 어린 시절의 행복이 그 사람을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지보다는, 불행한 어린 시절이 이 사회를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경고하는 것이 스릴러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 홍학의 자리, 정해연 > 중에서
정해연 작가의 책은 재미있다. 그동안 보았던 '구원의 날', '선택의 날', '유괴의 날' 세 편만 보아도 정해연작가의 책은 흥미진진한 스릴러 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세 편의 이야기보다 먼저 나온 '홍학의 자리'는 훨씬 큰 반전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소개하는 곳에서는 항상 스포일러 금지라는 문구가 따라다닌다. 책을 읽어보니 총 세개의 반전이 있었다. 다현에 대한 반전, 살인범에 대한 반전, 그리고 김준후에 대한 반전. 책을 다 읽고 작가의 말 중 "스릴러는 경고입니다." 라는 말이 머릿속에 박혔다.
스릴러는 진범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스릴러의 목적은 그 재미와 긴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이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학의 자리'는 무엇에 대한 경고일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변질되었을 때 어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많은 일을 통해 배웠다. 부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던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고, 자신을 무시한다며 이웃 주민에게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당신은 누구에게 인정받고자 하는가. 그 인정에 중독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 < 홍학의 자리, 정해연 > 중에서
개인적으로 김준후는 나르시스트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에 자신의 욕정을 위해 다현을 이용했고, 자신이 명예를 위해 교사직을 택했으며, 겉으로 보이는 안전된 모습을 위해 부부생활을 유지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상처가 될 존재가 될 때 그는 과감하게 버려버린다.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보다 더 만나지 말아야할 존재가 바로 이와같은 나르시스트라고 한다.
정해연작가는 평소 책을 재미있으라고 쓴다고 했는데 이번 책도 그 말에 부합하는 책이었다. 약간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간에 잠깐씩 등장하는 인물이 많다는 것과 너무 사설이 길다는 점은 집중하는데 방해요소로 남았다.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지루한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스릴러물로서는 정말 좋은 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 특히 다현에 대한 반전은 정말 컸었다.
“그거 아십니까? 홍학은 동성애가 굉장히 많이 발견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다른 수컷이 암컷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합니다...(중략)...홍학에 그런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 홍학이 좋다고 하던 그 아련한 표정 안에 그런 생각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네덜란드에 함께 가자고 했던 다현의 말이 단지 홍학 때문만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동성 결혼이 합법이었다. 네덜란드로 가려 했던 것은 다현이 생전 가고 싶어 했던 곳이라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보고 싶었다. 합법화된 동성 결혼이라도 정말 사람들은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까. - < 홍학의 자리, 정해연 > 중에서
3.책 소개
1)작가소개
'홍학의 자리'를 집필한 정해연 작가는 1981년생으로 202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백일청춘'으로 우수상을 시작으로 문학과 관련된 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사건과 진실', '구원의 날', '유괴의 날', '선택의 날', '더블' 등이 있다.
2)책소개
소설 '홍학의 자리'는 한 남자가 시체를 호수에 버리면서 시작된다. 프롤로그부터 충격적으로 시작하는 본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물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스릴러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며 소설속 사건이 절대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음을 경고하고 있다고 말한다.
'홍학의 자리'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다. 절대로 스포일러를 보거나 읽지 않고 본 소설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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